changseon

유창선 · @changseon

7th May 2017 from TwitLonger

안철수를 지지했던 분들께


이 글은 이번 대선 기간에 안철수를 지지했던 분들과 나누는 얘기입니다. 그 분들만 보시게 할 방법이 없어서 부득이 이렇게 올리는 것이니, 못마땅한 분은 굳이 끼어들지 않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안철수를 지지하는 분들과 엮이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거 기간 동안에 새로 페친을 맺은 분들도 많고 팔로우하는 분들도 많이 늘었더군요.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분류된다는게 저 먹고 사는 일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되는지라, 어디까지 생각을 드러내는게 옳은 건가 고민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깊이 발을 담그게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저기 소문이 많이 났더군요.

제가 굳이 나섰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2012년 대선 때, 저는 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될 경우에만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만, 그 얘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철수를 그렇게 몰아붙이면 박근혜한테 진다고 변죽만 울리다 말았습니다. 그 정도 얘기로도,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만, 대선이 그렇게 끝나고 5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내내 걸렸습니다.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서슬퍼런 사람들 눈치보고 적당한 선에서 비겁하게 타협한 탓이었겠지요.

이번에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철수는 그때는 많이 부족해 보였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들이 이것저것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극한대결의 5년을 다시 맞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낫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5년 내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얘기를 사람들 앞에서 하는게 저다운 선택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여러분을 지켜보기가 딱해서였습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그렇게 당하고 있는데도 어찌할 바 모르고 분통만 터뜨리며 속앓이 하고 있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양심적으로 멀쩡하게 살아온 한 사람이 MB아바타가 되고 부도덕한 패륜아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여러분에게는 마이크가 없었습니다. 진보라는 이름을 붙인 교수, 언론, 법률가... 그리고 다중들, 여러분이 사랑하는 후보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끝내 악이 받쳐서 사나워진 모습도 이번에 적지않게 봤습니다만 (저는 그건 말리고 싶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지요. 여러분은 마음만 먹으면 실검 1위를 만들어내고, 사실이 아니어도 세상이 사실로 믿게 만드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을까.... 보다 못해 제가 여러분의 편을 들어드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누구처럼 매니어들을 가진 사람은 못되지만, 그나마 조금 알려진 저라도 편을 들어주면 이 사람들이 조금은 덜 외롭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번 대선 초입부에 제가 올렸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라고. 저는 대선 끝나고 사망하면 그뿐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시는지요. 농담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을 진짜 이기려고 경쟁하는 것이 어떤 댓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진작에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이기에 여러분이 걱정하시는 것과는 달리 담담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저는 앞으로도 잘 살 겁니다. 저는 언제나 세상와의 불화 속에서 사는 길을 택해왔으니까, 새로운 일 아닙니다.

저에 대한 엇갈린 반응들이 이어집니다. 실망했다는 사람들, 반대로 고마웠다는 사람들. 그 편차가 극과 극입니다. 저는 힘쎈 다수의 사람들이 드러내는 적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개의치 않습니다. 상대적인 선택의 문제에 선와 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폭력에는 물러설 이유가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애당초 저의 관심은 누군가 자신을 대변해줄 사람을 간절히 찾던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 외롭지 않도록, 여러분 가슴 속에 맺혔던 얘기들을 제가 해드린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은 5월 10일 나타날 수도 있겠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판명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은 힘든 마지막 시간을 맞고들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지했던 후보는 정치적 기술과 말 주변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선한 의지를 가진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저 자신과 여러분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이틀 동안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의 원했던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적의 힘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여러분과 안철수 얘기를 나눌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주절주절 이런 얘기 올렸습니다. 고마웠습니다.

Reply · Repor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