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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th Apr 2020 from TweetCaster

임존성 任存城 / 이풍호 李 豊 鎬 (*시 전문은 본문 참조)
https://bit.ly/3b7g0tv 임존성 任存城 / 이풍호 李 豊 鎬


갈매기 울음소리
샛강으로 흐르고

水門 옆 외딴 길은 故鄕처럼 눈물겹다

끊일듯
이어지는 성
수천년을 헤이네

이끼 낀 바위틈엔
다람쥐 넘나들고

발끝에 채이는 돌, 祖上님의 상흔인가

묘순의
피맺힌 한이
세월 속에 묻히네

북소리 둥둥 울고
창검이 빛나던 날

그날의 숨결들이 젖어있는 둘레 위로

들린다
용솟음치던
칠백년의 그 怒濤.


* 임존성: 백제 부흥광복군(왕자 豊 등이 중심)의 최후 항전지로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소재 봉수 산에 성채가 아직도 남아있음. 지수신장군이 이곳에서 최후까지 羅 唐연합군에 항전하다 고구려로 망명하니 서기 662년경에 부흥운동은 실패로 끝남.
* 묘순: 임존성 축성시 오빠와의 내기시합에서 힘센 묘순이 이기지 못하도록 부모가 묘순에게 시간 걸리고 먹기 힘든 콩밥만을 먹였다함. 남존여비의 풍조가 작용한 이 내기에서 진 후, 약속대로 살해되어 큰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의 인물. 지금도 그 바위를 두드리면서 묘순아, 콩밥이 원수냐? 고 물으면 콩밥이 원수다 라고 대답한다.

** 임존성: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봉수산 산정에 있는 임존성은 1940년에 사적 90호로 지정되었으나 실제로 보호는 받지 못하고 있다. 성 둘레가 4 킬로미터쯤 되는 돌로 쌓은 성으로 높이가 2.5 미터, 폭이 3.5 미터이다. 성 안의 터는 이십팔만평 넘는데 층이 나 있는 집터가 여러 곳에 있고 우물터도 있다. 동국 여지 승람 대흥 편에 보면, 임존성을 설명하여 “이곳이 바로 백제의 복신, 지수신, 흑치상지 들이 당나라 장수 유인궤에 항거하던 곳이다. 지금의 본읍 관아 서쪽 13리 지점에 예 돌성이 있는데 그 길이가 5,194자이며 안에 우물 세 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일 듯 하다.”고 했다.
백제가 망한 뒤에 삼만명쯤의 병력과 함께 임존성에 진을 친 흑치상지는 소 정방이 이끄는 칠만이 넘는 당나라 군사에 용감하게 맞섰다. 백제군의 완강한 저항에 지쳐 일단 물러갔던 당나라 군사들은 이듬해에 유 인궤를 장수로 하여 임존성을 공략해 왔다. 그때에 백제군에서는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왕자 풍이 복신을 죽이는 내분이 일어나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마침내 유인궤에게 투항안 흑치상지에게 오히려 함락되고 말았다.
백제 부흥 운동의 마지막 격전지로 그 한이 깊이 서려 있는 임존성에는 후삼국 시대에도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세력을 다툰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 충청남도 편, 뿌리깊은나무,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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